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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야 시인의 옛시 감상
쓴 사람 이고야
쓴 날짜 2011-07-08 (금) 23:09
ㆍ추천: 0  ㆍ조회: 1669      
내 나이 예순 일곱
                    
                          채수
 
늙은 내나이 금년에 예순 일곱
지난 일 생각하면 마음이 아득하네
소년 때의 재능은 겨룰 사람이 없었고
중년 때의 공명도 나 혼자 현명했네
빨리 가는 세월은 노끈으로 매기 어렵고
구름 길 아득하여 말이 나아가지 않네
무슨 일로 세상 일을 모두 던져 버리고
봉래 꼭대기에서 신선과 짝하는고.
 
 
채수: 1449(세종 31)~1515(중종 10).인천사람
 
그는 뒤에 불교와 도교의 색채가 짙은 〈설공찬전〉이라는 소설을 지은 것 때문에 곤란을 겪게 되었다. 〈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1511년 사헌부에서는 "〈설공찬전〉의 내용이 '윤회화복지설'(輪回禍福之說)이어서 아주 요망하므로, 문자로 베끼거나 언문으로 번역해서 읽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 책을 모두 거두어 불태웠기 때문에 작품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어숙권의 〈패관잡기〉에 약간의 기록이 남아 있어 대강의 줄거리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로 인해 도학강경파에게 미움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과 대수롭지 않은 일이므로 크게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는 반론이 제기되었지만 채수는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게 되었다. 그뒤 경상도 함창에 쾌재정(快哉亭)을 짓고 독서와 풍류로 여생을 보냈다. 산경(山經)·지지(地誌)·음악·시문(詩文)에 능했으며, 김종직·성현 등과 가깝게 지냈다. 1703년(숙종 29) 함창의 사림에 의해 임호서원(臨湖書院)이 세워져 표연말(表沿沫)·홍귀달(洪貴達) 등과 함께 제향되었다. 저서에 〈나재집〉이 있다.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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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은 편하지 않았겠지만
쾌재정의 채수 어른 처럼  풍류와 독서로 살고 싶다
 
 
이름아이콘 정한철
2011-07-08 23:54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시입니다.
"봉래 꼭대기에서 신선과 짝하는" 심정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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