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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쓴 얼레빗

 

이곳은 독자 여러분이 쓰는 방으로 매주 금요일 한편씩 소개합니다. 다음을 참조 하시어 많은 참여 바랍니다. 다만, 이글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와 그 방향이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길이: 김영조 소장이 쓰는 얼레빗을 참고해서 3문단 정도

내용: 유·무형 문화재, 유적지, 고전작품, 땅이름 유래, 외국에 있는 우리문화재, 기념비 등등 소재는 자유지만 가능하면 한국 전통문화와 관련된 글을 환영합니다.

채택: 보내주신 글은 되도록 올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얼레빗의 주인이 되어 도전해주십시오. 글을 주실 때 관련된 사진이나 그림이 있으면 함께 주시고 없으면 글만 주셔도 좋습니다.

글에 대한 문의 - 전화:02-733-5027, 누리편지(이메일) : pine9969@hanmail.net 로 문의하시면 친절히 안내해드리며 아래에서 신청하셔도 됩니다.

 

 

쓴 사람 김영조
쓴 날짜 2013-02-08 (금) 07:22
누리집 http://www.solsol21.org
첨부#1 jyh.jpg (119KB) (내려받기:2041)
ㆍ추천: 0  ㆍ조회: 992      
뮤즈(Muse)와 함께 한 여행

아주 오랜만에 떠나는 기차여행이었다.

열두 시간을 기차에서 보낸다는 것에 대한 왠지 모를 기대감과, 기차가 태백선 눈꽃길을 통과한다는 광고문구에, 나는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래, 창밖으로 쌓인 눈들이 흰 꽃처럼 흩날리는 환상적인 경치를 즐길 수 있으리라, 기차 안에서 책을 읽으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멋진 설경을 내다보는 우아한(?) 내 모습을 상상해보니…….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가고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아침 일찍 기차에 올라 샌드위치를 먹었다. 모닝커피를 마시며 박완서 선생님 소설집을 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마냥 좋았다. 내가 탄 칸 앞쪽 반은 60대쯤 되어 보이시는 단체관광객 어르신들, 뒤쪽 반은 둘 혹은 넷 단위로 조용한 여행을 즐기러 온 듯한 관광객 분들이었다. 어르신들의 호탕한 웃음소리도, 때로는 강렬하게 풍겨오는 음식냄새도, 왁자지껄한 수다도 마냥 괜찮았다. 열차 여섯 량에 나누어 탄 400명이 넘는 관광객들은 저마다 여행의 목적도 방식도 다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아쉬움은 첫 정차 역에 내렸을 때부터 시작됐다. 하늘에서 가장 가깝다는 산간 어느 역에 내려 사진도 찍고, 엄마 갖다드릴 나물을 사고 나자, 탑승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휴식시간은 딱 그만큼이었다. 사진 한 장 찍고 물건 살만큼. 철길도 걷고, 작은 마을도 돌아보려했던 내 작은 로망이 조금씩 아쉬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정차 역에 내려서는 아쉬움이 급속도로 커졌다. 기차역 옆 허허벌판에 덩그라니 마련된 장터의 저녁 먹거리는 가격에 비해 자리도 내용도 부실하게 느껴졌고, 역 근처 동네 구경을 위한 가이드나 설명도 거의 없었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더니……. 단체관광의 장삿속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문득 나 같은 소심하고 조용한 여행자를 위한 일정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즐겁자고 온 여행에 후회만 남길 수는 없다. 힘들수록 재밌는 것을 찾아보자는 낙천주의자 기질이 발동해, 나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구경거리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어르신들의 흥겨운 ‘막춤’. 장터 일각에 마련된 무대에 소위 ‘뽕짝’을 열창하는 모습, 그 뽕짝을 배경음악삼아 ‘관광버스춤‘을 신명나게 추시는 모습이었다. 나는 세상에 막 나온 아이처럼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할머니 생각이 났다. 유난히 흥이 많았던 할머니는 ‘뽕짝’만 나오면 언제, 어디서든 막춤을 추곤 하셨으니까.    

다시 기차에 오른 나는 다른 칸 풍경을 구경하러 갔다. 그곳은 장터에서의 흥취가 그대로 이어졌다. 열차 가운데 열 분 정도의 어르신들이 기타를 치며 그분들만의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었다. 얼굴에 실핏줄이 오를 정도로 열창을 하고, 박수를 치며 추임새를 넣는다. 이탈리아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의 제목도 긴 노래를 진지하게 부르시는 분도 있었다.

마치 악(樂)신 뮤즈가 강림하신 것 같은 그분들을 보며 궁금해졌다. 대체 저 강력한 에너지는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 걸까? 잠시 그분들 주변을 살피던 나는, 그 원천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기폭제가 뭔지 깨달았다. 먹음직스레 담긴 홍어회 한 접시와 바닥을 점령하고 있는 하얀 통들. 아! 막걸리다!

열차 순례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와 다시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다행이다. 그래도 우리 칸은 뒤 칸에 비하면 정말 조용한 편이어서 무얼 하든 마음이 좀 편하니 말이다. 책장을 펴다말고 나는 문득 겉표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기나긴 하루≫, 읽고 있던 책의 제목이 의미심장했다.

여행에 나섰을 때 내가 이 책을 택했던 것이 아니라 이 책이 나를 택했던 게 아닐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차단과 단절이 편한 습관처럼 배어있는 시대. 타인을 관심과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건 기나긴 내면의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다. 얼마쯤 내 안의 시간을 가져야, 할머니가 막걸리만 드시면 왜 그리 필사적으로 노래하고 춤추셨는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날의 기차여행을 단답형 몇 개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재밌었다. 아쉬웠다. 그리고 기--일었다.    
     
                      독자  이희정 / 프리랜서 방송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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