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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말 찌꺼기
쓴 사람 이윤옥
쓴 날짜 2011-04-01 (금) 12:02
ㆍ추천: 0  ㆍ조회: 1741      
천황을 위한 <멸사봉공>


공직에 있는 사람은 멸사봉공의 정신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옛날 선비들은 우선 책을 놓지 않았고, 지조가 있고 줏대가 있어서 공무를 맡으면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자기가 말해야 할 것은 비록 목을 베이는 한이 있더라도 할 말을 다 해서….≪이문구, 산 너머 남촌≫

<멸사봉공(滅私奉公)>이란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하여 씀” 이라고 점잖게 풀이 하고 있다. 여기서 사욕을 버리라는 것은 알겠는데 ‘공익’이란 말은 좀 모호하다. 공익(公益)의 사전 풀이는 “사회 전체의 이익” 이란다.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일테면 일본군국주의를 위하여 조선인이 희생하는 것도 멸사봉공이란 뜻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이던 미나미(南次郞)가 도지사들을 모아 놓고 행한 훈시 중에 들어 있다. 1939년 4월 19일자 <조선총독부관보>에 미나미는 “국민정신 앙양” 을 위해 ‘충남 부여에 일본 신궁 창립, 지원병 강화, 황도정신 선양’ 등을 내세우면서 다음과 같이 훈시했다. “모든 官公吏가 滅私奉公의 情熱에 불타는 心境에 이르르면, 官民의 間에 드디어 圓滑을 加할 것은 勿論, 至誠의 映하는 바 或은 地主와 小作人, 或은 企業者와 勞務者와 같은 사이에도 따뜻한 諒解를 增進하여 國家에의 奉仕로써 第一義로 하는 所謂 總親和, 總努力을 期치 않고도 實理될 수 있을 것이다”

훈시 중에 ‘멸사봉공의 정열에 불타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때의 멸사봉공이 누구를 위한 멸사봉공일지는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알 것이다. 일본 위키피디어의 멸사봉공 뜻을 보면 “ 자기자신에게 마이너스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주인이나 천황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여 봉사 하는 정신. 1945년 이전 수신교육(修身教育)의 기본 사상 중 하나였다.”라고 풀이 하고 있다. 1945년이라면 패전 이전을 말한다. 태평양전쟁이 한창 극에 달할 때 일본의 교육 방침은 첫째도 둘째도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군국주의 실현이었다. 천황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 놓아야 할 시절에 쓰던 말이 멸사봉공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멸사봉공을 ‘克己奉公’ 또는 ‘廉洁奉公’이란 한자를 쓴다. 한국도 예전 문헌에는 ‘멸사봉공’이라 쓰지 않았다. 멧시호코(멸사봉공)는 일본제 충성을 뜻하는 말이다.

고려말 학자인 권근(權近 1352~1409)의 시문집인《양촌집(陽村集),33권》에 배사향공 ‘背私嚮公’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를 요즘 사람들이 ‘멸사봉공’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뛰어난 선비와 충성을 다하는 대신과 우뚝한 호걸과 위대한 영웅과 산림의 처사(處士)와 초야에 묻힌 인재들도 모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일에 민첩하고 공을 세우며, 임기응변하고 멸사봉공(滅私奉公)하며, 간사한 자를 내쫓고 완만한 자를 물리치며, 아첨하는 자가 나오지 못하고 질투하는 자가 용납되지 않아서 법령이 수행되고 도리가 융성해졌습니다.
卓犖之傑。瑰偉之雄。山林之逸。草野之窮。莫不躍鱗振羽。趨事儳功。迎機應變。背私嚮公。斥逐邪佞。拔去頑兇。讒謟不進。媦疾不容。令修弊革。理道惟豐。”

또한 조선 중기의 문인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의 문집인 《우계집(牛溪集)》에 지봉공 ‘只奉公’을 요즘 사람들이 멸사봉공이라고 한글 번역을 해두었다.

“정자(程子) 말씀에, ‘공정하면 하나가 되고 사사로우면 만 가지로 달라진다.’고 하였으니, 신하가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오로지 멸사봉공(滅私奉公)하며 나라를 걱정한다면 천 명 만 명이 한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스스로 사리사욕을 챙겨 자신만을 아낀다면 사람마다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질 것이니, 어찌 하나로 통일될 수 있겠습니까.
程子之言曰。公則一。私則萬殊。人臣不有其身。只奉公憂國。則千萬人可爲一心。若自私愛身。則人各爲心。安能合一乎。”


700여 년 전인 권근 시대에도 멸사봉공의 뜻은 있었다. 다만 그를 표현하는 말이 배사향공(背私嚮公)이었으며 조선에 오면 지봉공(只奉公)으로 쓰였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쓰는 멸사봉공이 일본 천황을 위한 말이 아니었다면 모르겠으나 표준국어대사전 풀이처럼 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한 뜻으로 출발한 말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제국주의를 충심 껏 섬기라는 뜻으로 쓰였던 말이 그 본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이에 일반 백성들도 마구잡이로 쓰고 있으니 안타깝다. 멸사봉공이란 말이 누구를 위한 멸사봉공인지나 알고 썼으면 좋겠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 이윤옥 (59yoon@hanmail.net)

*<사쿠라훈민정음,인물과사상, 2010.11>에 이어 위 글은 2탄 원고임
*글을 옮길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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