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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조의 이 사람

 

쓴 사람 관리자
쓴 날짜 2012-02-01 (수)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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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추천: 0  ㆍ조회: 2695      
젓대 - 이생강 명인

젓대(대금)로 불어내는 천년의 향기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이생강 명인 
 




젓대 !
세상을 평정하는 소리
천 가지 만 가지 근심걱정을 잠재우는 소리

즈믄해의 소리를
아프도록 아프도록 간직해온 악기여

이 시대의
온갖 시끄러운 소리까지도
뜨겁게 뜨겁게 껴안는 악기여 

눈발 날리는 겨울밤의 소리를
품은
그 아름다움으로
이제 나를 황홀하게 해다오.

한유천 시인은 <젓대 소리>에서 젓대(대금)를 이렇게 노래했다. 신라의 '만파식적'이 천 년을 흘러 여기까지 왔나 보다. 이생강의 젓대 소리를 듣고 뉘 이렇게 느끼지 않으리오. 흐느끼듯 흐느끼듯 이어지는 젓대는 만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우리말로 '젓대'인 대금의 한국 최고 명인으로 꼽히는 죽향(竹鄕) 이생강(76살ㆍ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선생. 그는 다섯 살 때 처음 피리를 잡은 이래 평생을 전통국악기 그 가운데서도 대금, 중금, 소금, 단소, 퉁소, 피리 같은 관악기와 함께 살아왔다. 그러니 76살인 명인은 70년이 넘는 세월을 관악기와 사랑으로 이어온 것이다. 




명인은 지난 2005년 국악상으로는 가장 크다는 방일영 국악상을 받았다. 이에 수상의 의미를 담아내는 말들이 이어졌었다.

당시 방일영 국악상의 심사위원장인 한명희 선생은 "그동안 그에게 붙여져 온 명성은 결코 우연이나 허명이 아니고 예술적 자질과 노력이 직조해온 필연적 결실이라 하겠습니다. 실로 이생강 명인의 젓대음악은 그동안 암울한 시대의 아픔을 달래오며 우리의 생활 속에 포근한 서정의 앙금을 쌓아 왔습니다. 특히 지난 세기 후반 내내 왕성한 활동을 통해서 대중의 심금을 달래가며 한국 음악계, 특히 관악음악에 기여한 몫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해금 명인 김영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장은 "좀처럼 식지 않는 열정으로 장소를 가지리 않고 어디서나 우리의 소리를 전파하려는 자세야말로 예술인의 기질을 타고난 것으로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생강류 대금산조에서 보여준 특이한 취법(吹法)은 그만이 갖고 있으며 선생 스스로 고집스럽게 주장하시는 면이 강하게 두드러집니다.
"라는 평가를 했다.

이어서 한양대 권오성 교수는 "원효대사처럼 모든 경계를 넘나든 명인", 김문성 고 김옥심추모사업회 회장은 "아줌마 응원부대 몰고 다니는 국악 스타", 윤중강 국악축전 예술감독은 "산조 불면, 무지개 뜬다!", 최종민 동국대 교수는 "창조역량을 겸비한 관악기의 달인", 김정한 서울대학교 교수는 "천하제일 대금", 박환영 부산대학교 교수는 "타고난 관악기의 귀재"로 평가하며 명인을 치켜세운다. 

 








 

그는 '퓨전국악'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의 원조로 불린다. 보수적인 국악의 풍토 속에서 눈총을 받아가며 60년대 말부터 대금과 서양악기와의 협연은 물론 대금을 이용한 가요, 팝, 재즈 연주를 시도했고 이렇게 만든 크로스오버(넘나들기) 음반도 수십 개나 된다.

어느 연주회에 가거나 명인의 연주는 청중들의 혼을 빼놓는다. 2011년 10월 구례동편제소리축제에서도 명인이 “목포의 눈물”을 연주하자 청중들은 모두 자지러졌다. 기립박수는 물론이었다. 어떤 이는 크로스오버에 눈총을 주는 이도 있지만 대중이 대금소리를 통해 국악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것은 국악의 후퇴가 아니라 크나큰 발전 아니던가?

몇 년 전엔 수술을 한 일주일 뒤 의사가 말리는 데도 명인은 팬들과의 약속이라며 무대에 섰고, 성공적인 공연을 했다. 관악기에 대한 사랑은 병마도 어쩌지 못했다. 악기만 만나면, 무대에 서기만 하면, 그리고 팬들을 만나기만 하면 명인은 펄펄 난다. 명인의 행복은 오직 우리 관악기에 있다는 증거이다.

신라에선 만파식적으로 모든 시름을 없앴다고 한다. 혹시 명인의 젓대는 즈믄해(천 년)의 혼을 담고 있는 이 시대의 만파식적이 아닐까? 우리가 그의 소리를 들을 때 이 나라의 모든 근심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향기가 진동하는 명인의 젓대소리를 들어보자.

 


 





  

퓨전이 생각나는 이생강, 그러나 나는 언제나 두루마기차림일 것
[
대담]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이생강 명인

 - 이생강의 대금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60년 한국민속예술단 단원으로 프랑스 파리에 간 적이 있었다. '춘향극'의 반주자로 간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갑자기 맹장수술을 하는 바람에 그 시간을 땜질하려고 긴급히 독주자로 나서게 되었다. 이때 나는 온 정성을 쏟아 연주했고 한갓 궁중 음악이거나 보잘것없는 음악으로 생각했던 프랑스 사람들이 '수십 마리의 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소리'라며 극찬했다. 유명 일간지 <피가로>는 '대나무에서 나는 소리가 이렇게 대단할 수가 있느냐?'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때를 계기로 대금 하면 많은 사람이 이생강을 떠올리게 되었다. 67년 일본 전국 순회공연에는 음악가들이 줄을 서서 들을 정도였으며 정부의 행사를 따라 전 세계를 돌며 연주도 했다. 하지만, 국내보다는 나라밖에서 먼저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아쉬운 일이라 할 것이다."

- 이생강 대금 연주의 특징을 말한다면?

"이생강 하면 먼저 크로스오버를 떠올릴 것이다. 그것은 국악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강요가 아닌 다양한 차림표를 내놓고 뷔페식으로 선별해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다. 이를 위해 나는 서양의 7음계를 5음계로 바꾸고 호흡법 등의 기법을 개발했다. 이 퓨전은 민속악을 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잠깐의 필요한 외도를 한 뒤 돌아온다. 그리고 늘 퓨전보다는 전통음악이 먼저였다. 원형을 망각한 음악은 생명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시골밥상처럼 소박한, 된장처럼 구수한 연주를 할 것이다. 한 가지 더 말한다면 대금은 옆으로 불지만 청중을 향해 돌아앉아 청중을 바라보며 연주한다. 그래야만 청중과 호흡하는 연주가 가능해진다. 또 그것이 청중과 하나 되는 우리 문화의 본질일 것이다."

- 두루마기 차림으로 갓을 쓰고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일부 연주자들은 한복이 아닌 차림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생각은?

"나는 국악인이 한복을 입고 연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국악은 조선의 마음으로 연주할 때 제대로 된 음악이 생성될 것이 아닌가? 그러려면 옷차림 마음가짐 모두 전통적이어야 바람직할 것이다. 그래서 연주 때 늘 한복ㆍ갓과 함께했다. 

그런데 젊은 연주자들을 보면 한복이 아닌 이상한 옷을 입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굳이 탓하지 않는다. 물론 오래 그런 옷을 입는다면 지적을 해주어야 하겠지만 곧 다시 돌아올 것으로 믿는 탓이다. 또 그런 옷을 입는 사람도 있어서 한복이 더욱 빛나는 것은 아닐까?”

- 제자들이나 혹시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이생강의 기록을 깰 수 있는 제자가 나와야만 한다. 그래야만 내 음악이 영원히 갈 것이란 생각이다. 그리고 대금을 연주할 때 '입김', '입바람', '헛바람' 등을 사용하는데 '입김'과 '입바람'만으로 연주해야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헛바람'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연주 전체를 기교에 치중한 나머지 '헛바람'을 쓰게 되면 숨이 짧아져 음이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평론가들이나 국악상 심사위원들께 하고 싶은 말은 음악을 겉만 보지 말고 깊이 숙성된 맛을 평가해 달라는 것이다. 형식에 얽매이고 억지로 힘들여 내는 소리를 인정할 것이 아니라 내재율이 잠재된 것을 봐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대담하는 내내 명인에게서 느끼는 생각은 소탈하다는 것이다. 연주하는 동안에야 거의 신들린 모습으로 우러러볼 수밖에 없지만 일부 명인에게서 보는 그런 말 붙이기 어렵다는 느낌은 없다. 소탈하다는 것은 명인의 내공과 자신감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명인의 젓대소리를 들으며 아름답게 세상을 살아갈 일이다.

이름아이콘 서인영
2012-02-10 14:20
아 이생강 선생님 이야기 감명 깊습니다.
한번 뵙고 싶네요.
그리고 그 가슴 울리는 소리도 듣고 싶구요
   
이름아이콘 광주독자
2012-02-13 08:31
이생강 선생님의 "목포의 눈물" 연주는 기가 막힙니다.
청중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시는 선생님께 존경을 드립니다.
이 글을 읽으니 선생님의 연주를 또 듣고싶어집니다.
   
이름아이콘 한상인
2012-02-15 14:37
아! 이생강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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