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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조의 이 사람

 

쓴 사람 관리자
쓴 날짜 2011-09-27 (화)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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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추천: 0  ㆍ조회: 2013      
일본살이 70여 년 우리말을 부여잡고 몸부림치는 김리박 시인
무대(해류)처럼 서로 하나 되는 겨레였으면

무대(해류)처럼 서로 하나 되는 겨레였으면
[이 사람] 일본살이 70여 년 우리말을 부여잡고 몸부림치는 김리박 시인

 

지난 8월 25일 강원도 원주시 원주역사박물관에서는 특별한 세미나가 열렸다. “재일 교포문학의 현주소”라는 주제로 재일동포 김리박 시인을 초청하여 일본 쪽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리박 시인은 “재일 교포문인들은 어려운 여건 아래서 지난 1992년 <재일한국문인협회>를 만들고 ≪한흙(大地)≫이라는 계간잡지를 50호째 펴내고 있다. 어느새 20돌을 맞이한다. 남의 나라에 살면서 한겨레의 말글을 잊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면서 써 내려간 작품은 그러나 일본 안의 독자층은 옅다. 이 책은 한국과 북한에 모두 보냈는데 북한에서는 남한 것을 왜 보내느냐고 하고 한국에서는 왜 일본 것을 보내느냐는 반응이다. 이것이 현재 일본 내 교포문학의 현주소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김 시인은 재일교포를 정의하길 “재일 교포는 망국노, 망향자, 통일ㆍ민족화해촉구자, 이민자, 피기민자, 피차별자, 피억압자, 피배타자, 독특한 문화 창조자”라고 규정지었다. 그만큼 복잡한 처지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또 “재일 교포는 남북한 양쪽 정부로부터 버림받아 서러운 세월을 살았지만 단 한 번도 믿나라(조국)를 버린 적이 없다.”라고 하면서 한국 정부와 국민이 재일교포의 삶과 동포문학인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내보였다. 이날 원주역사박물관을 뜨겁게 달군 재일동포 시인 김리박 선생은 누구인가?

 

▲ “재일교포 문학의 현주소”란 주제로 토론을 하는 발제자와 토론자

 

▲ 김리박 선생이 펴낸 재일동포 문집 ≪한흙≫과 ≪믿나라≫ 시조집

 

“식히려 뒤쪽 가고 데우려 마쪽 가나

오르고 내리고 새쪽 가고 갈쪽 가도

언제나 한집안이라 상냥케 마주치네.“

시인은 <무대>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무대”란 “해류”를 말하는 토박이말이다. 시인은 “우리나라는 곶나라(반도 나라)여서 세 쪽이 바다다. 바닷물은 ‘남’도 ‘북’도 헤아리지 않고 한 해 열두 달 흐르며 오간다. 그런데 얼 담고 사는 우리는 쭈삣하면 ‘남’이요, ‘북’이요 하고 잘 맞선다. 무대처럼 서로 흘러가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몸이 뜨거우면 식혀야 하고 차면 데워야 몸과 맘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가?”라고 하면서 분단된 현실을 아파했다.

김 시인은 6살 때 일본에 건너가서 60여 해를 살았다. 그곳에서 온갖 차별을 받으면서도 민족혼을 잊지 않으려 애썼고, 일본말이 아닌 애오라지 토박이말로 시를 쓰면서 일본인들에게 한국어(조선어)를 가르쳐왔다.

 

▲ 교토 미무로또지 아지사이(수국) 공원에서 다정한 김리박 선생 부부

 

글쓴이가 처음 시인을 만나 받은 명함에는 핸드폰이라는 말 자리에 “손말틀”이란 말이 쓰여있었다. 글쓴이를 비롯하여 한말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명함에 휴대폰이란 말 대신 “손전화”라고 쓰는데 견주어 김 시인은 완전한 토박이말인 “손말틀”을 쓰고 있었다. 비록 하나의 낱말에 지나지 않지만 그날 명함 속의 ‘손말틀’이란 말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김리박 시인에 대한 첫인상으로 나의 뇌리에 새겨져 있다.

지금 한국은 곱고 아름다운 토박이말들을 한자와 일본말 찌꺼기 그리고 밀려드는 외래어에 안방 자리를 내주고 겨우 툇마루에 위태롭게 서 있는 신세이다. 이러한 가운데 남의 땅 일본에서 아름다운 우리말글이 무슨 보석이라도 되는 양 갈고 닦는 이가 있는데 바로 김리박 시인이다.

현재 김리박 시인은 대한민국 한글학회 일본 간사이지회 회장, 재 일본한국문인협회 회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일본 히라가타시 교육위원회 조선어강좌, 일본용곡대학(龍谷大學) 한국어강좌, 일본관서대학(關西大學) 비교지역문화강좌 등을 맡아 수많은 일본인에게 아름다운 우리말글과 문화를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뿐인가? 지난해에는 일본 안의 조선인학교 차별을 반대하여 교토 도청에서 오랫동안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일본정부의 조선인 차별정책도 좌시하지 않고 있다.

교토 시내에 있는 그의 서재에는 백범 선생과 외솔 최현배 선생의 큼지막한 사진이 걸려있다. ‘한글이 목숨이다’라는 철학으로 평생을 우리말글 사랑에 앞장선 외솔 선생의 정신을 올곧게 이어받아 실천하는 김 시인의 우리말글 사랑을 따라갈 사람은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도 없을 것이다. 그가 평생을 우리 토박이말로 시를 쓰며 재일동포 문학을 이끌고 있는 모습을 대담을 통해 알아보자.

 

 

맨발로 온 나라를 걸어 봤으면 좋겠다.
[대담] 재일동포 토박이말 시인 김리박

 

- 일본생활 몇 해인가? 모국어를 잊어버릴 정도인데 어떻게 유창한 모국어를 할 수가 있었나?

“날나라 살이(외국생활)는 이제 67해가 된다. 하나는 돌아가신 어머님이 날나라 말을 애써 배우려고 하지 않으셨고, 우리 말로 믿고장(고향) 이야기, 살붙이(식구, 친척)들의 이야기를 줄곧 해 주신 것과 우리 높은 자리 조선 배움집(고등학교)과 조선 큰 배움집(대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 토박이말에 매달린 까닭은 무엇인가?

“하나는 돌아가신 어머님이 바닥쇠 말(토박이 말)을 늘 쓰셨다는 것이다. 둘째는 조선 고등학교 스승님이 되나라 꼴글(한자)을 안 쓰고 되도록 바닥쇠 말(토박이말)을 쓰라고 하셨기 때문이며 셋째는 날나라 사람들이 되나라 꼴글을 쓰면서도 그 소리와 뜻은 그들의 바닥쇠 말로 옮겨 쓰고 있다는 것이며 넷째는 거룩하신 최현배 큰 스승님과 한글 새소식에 실린 정재도 스승님의 가르침을 늘 배우고 있었기 때

 

문이다.”

- 시인의 시를 보면 지금 한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많이 나온다. 그만큼 잊힌 말들도 많이 쓴다는 얘기다. 이미 생활화된 한자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쓰지 않고 모두 토박이말로 바꿔 쓰는 까닭이 있나?

“한 때 김지하 글노랫꾼(시인)도 그와 비슷한 물음을 나에게 한 적이 있다. 우리가 꼭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익혀 늘 쓰는 꼴글말(글자)은 하는 수 없이 쓰되 바르고 아름답고 힘 있고 맑은 우리 말이 있다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옛말 묶음, 사투리 묶음 따위를 많이 깊이 알아야겠고 이웃나라 말도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그리고 찾아도 없는 말은 새로 만들어 쓸 줄 알아야 한다. 보기를 든다면 '어린이'라는 말은 이승의 어느 나라 말보다 바르고 상냥하고 아름다운 말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 재일동포 사회에서 가장 절박한 문제는 무엇인가?

“날나라 한겨레(해외동포)에 있어서 가장 앞서 풀어야 할 것은 하나 된 믿나라(조국), 하나된 겨레이니 따라서 무엇보다 우리 말글을 제 손, 제 눈, 제 입처럼 다룰 줄 아는 것이다.

- 지금 재일동포 사회를 보면 2~3세는 거의 모국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재일동포 사회에서 토박이말을 포함한 모국어는 사라지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하나?

“오늘날 이른바 '조선 총련'에 몸담고 있는 한겨레(재일동포)도 날나라(일본) 구위의 못된 짓과 믿나라의 덜 도움에 따라 우리 말글이 시나브로(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깎이고 있다. 그러나 날나라 구위를 꾸준히 타일러 깨우쳐 주고 또한, 믿나라도 두텁게 도우면 우리 말글은 아주 사라지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싱싱하게 더 힘있게 돋구고 꽃을 피울 것이다.”

- 시인에게 있어서 모국어 곧 토박이말이란 무엇인가?

“바닥쇠 말(토박이말)은 얼살, 곧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해 주는 피이자 뼈이자 심줄이다. 다른 보기를 들면 괴테는 독일 말로 썼기 때문에 훌륭한 글갈(문장)이 되었고 또한 톨스토이도 러시아 말로 썼기 때문에 온 누리의 글갈이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 재일동포 문인으로서 고국에 바라는 점은?

“첫째는 날나라 한겨레를 바르게 바르게 보는 것이다. 곧 그 피눈물의 해적이(연보)로 다룸<취급)을 못 받은 일들, 믿나라·믿고장에 대한 뜨거운 사랑, 하나 된 믿나라와 하나 된 한겨레를 보기 위해 줄곧 주름잡으려 싸우는 삶 따위를 잘 알도록 힘쓰는 것이다.

- 앞으로 꿈이 있다면?

“우리나라가 하나 되어 맨발로 부산서 신의주, 신의주서 백두산을 거쳐 아오지, 아오지서 함흥을 거쳐 원산, 원산서 포항을 거쳐 부산까지 걸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나라 온 겨레가 바르게 살고 얘기들을 곱고 슬기롭고 씩씩하게 키워 온 누리 사람들이 부럽게 보는 겨레가 되고 센 나라가 되도록 슬기와 땀과 힘을 바치고 있는 모습이다.”

 

 

이름아이콘 이윤옥
2011-09-28 07:37
우리들도 잃어버린 토박이말 정겹습니다. 한밝 선생님! 좋은 글 앞으로도 많이 많이 써주세요. 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옷깃을 여밉니다.
   
이름아이콘 토박이말사랑
2011-09-28 07:50
아 일본에 살면서 토박이말을 고집하는 분이 계시는군요.
정말 훌륭한 분이십니다.
한국에서도 잊은 토박이말을 일본에 살면서 잊지 않고 전도사 역할을 해내시고
정말 존경스럽니다.
   
이름아이콘 장지원
2011-10-15 21:54
매주 월요일 한밝 선생님의 시조를 읽으면서 재일교포들의 지나온 삶을 반추해봅니다. 한밝 시인님께서 노래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교포들 삶의 명암'을 덕분에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름아이콘 송인수
2011-10-16 23:42
김리박 선생님은 이 시대 최고 애국자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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