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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조의 이 사람

 

쓴 사람 관리자
쓴 날짜 2011-07-08 (금)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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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소리 산타령 무형문화재 보유자 황용주

우리 국악은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푸대접을 받다가 이제야 겨우 정부의 지원도 조금이나마 받고, 세계문화유산에도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일반 국민에겐 이름조차도 생소한 분야가 있다. 바로 선소리 산타령이 그것이다.

경기 지방에 전승되어 오는 《산타령》은 입창(立唱)형식, 즉 서서 부르는 노래로 좌창의 12잡가와 함께 경기소리의 대표적인 노래로 꼽는다. 구성악곡은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잦은 산타령’을 기본 틀로 이어 부르는 형식의 노래이다.

《산타령》은 예로부터 예인집단에 의해 전승된 것으로 불가(佛家)에서는 주로 절에서 의식이 끝난 후, 산타령과 민요로 일반 대중을 위로하였고, 도시와 농촌에서는 넓은 마당에서 불을 밝히며 참가자들과 함께 즐겼던 노래였다.

특히《산타령》은 다리밟기[踏橋]놀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노래였다. 1900년대까지도 서울의 왕십리와 뚝섬을 잇는 “살고지다리”에서는 정월 대보름 다리밟기를 했는데 이날 밤, 서울의 산타령 패(牌)들이 전부 이곳에 모여 목말을 타고 목청을 높여 《산타령》을 부르며 밤을 새워 흥겹게 놀았다. 100년 전의 노래잔치를 연상해 보면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성동구민뿐만이 아니라, 서울시민이 참가하는 잔치 마당에 율동을 곁들인 합창단원들이 저마다 기량을 드러내고 여기에 참가한 일반 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 즐기던 주요 종목이 바로《산타령》이었다는 말이다.

▲ 나이 어린 제자들과 함께 황용주 명창이 “개구리타령”을 부르는 모습

경기소리의 큰 스승 박춘재나 김태운이 전하는 유명 소리패로는 이태문의 뚝섬패를 비롯하여, 이명길이 이끄는 왕십리패, 권춘경이 모갑이로 있던 동막패, 소완준의 과천패, 그 외에도 성북동패, 쇠붕구패, 아오개패, 진고개패, 방아다리패, 배오개패, 자하문밖패 등이 있었다고 하지만, 변화의 물결에 밀려 전문적으로 부르던 선소리패에 의한 연창(演唱)은 이미 맥이 끊어진 지 오래되었다.

《산타령》은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된 이래 40여 년이 지난 현재, 당시의 보유자들은 모두 세상을 떴으며, 지금은 제2세대의 선두주자인 황용주ㆍ최창남 선생이 《산타령》음악을 재현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길을 걷는다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은데 55년 동안 선소리 《산타령》을 부르며 외길을 살아온 이가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황용주 선생이 바로 그 주인공으로 한국 산타령의 대명사로 불린다.

지난 5월 24일 오후 3시 30분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 산타령보존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단체총연합회, 국립국악원, 국악신문사 등이 후원한 “황용주 예악생활 55주년 기념공연”이 있었다.

공연은 시작 30분 전부터 극장 로비를 가득 채운 관객들로 초만원을 이뤘고 일부 관객들은 표가 모자라 입장이 어려울 정도로 이날 공연에 거는 관심도가 컸다. 하지만, 이는 선소리 산타령의 인기가 아니라 황용주 명창이 그간 갈고 닦은 인기일지도 모른다.

▲ 단아한 모습으로 장구를 쳐가면서 좌창을 부르는 황용주 명창

선소리는 말 그대로 서서 부르는 노래로 앉아서 부르는 것보다 에너지 소모가 많을 것이다. 올해 75살인 황 명창은 공연장에서 장구를 멘 채 제자들을 지휘하며 산타령을 불렀는데 날렵한 그 모습에서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종로3가에서 창덕궁 돈화문으로 가는 국악로 들머리(초입)에는 황 명창의 연습실이 있다. 그곳에서 평생 선소리 하나로 인생의 승부를 걸어온 황 명창을 만났다. 화려한 조명 아래의 무대 모습이 아닌 평범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황 명창은 반갑게 기자를 맞아 주었다.

 

1,200여 쪽짜리 경서도 창악대전 펴낼 터

[대담]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 산타령 예능보유자 황용주 명창

 

- 남들이 하지 않는 산타령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할아버지께서는 일제가 상투 자르고 면장 하라고 하자 거부하셨다. 그리곤 학교에 보내면 왜놈 된다면서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신 꼿꼿한 분이셨다. 할아버지는 한학자로 시조를 즐겨 부르시던 분이어서 나도 흥얼흥얼 따라 부르곤 했다. 신식 문물에 접할 수 없었던 나는 서양 노래는 전혀 부를 줄 몰랐다.

해방 뒤 9살 때 겨우 국민학교 2학년에 들어갔는데 국악원이 있던 비원 앞을 지나가다가 게시판에 붙은 국악강습 안내를 보고 어렸을 때부터 익숙했던 시조반에 들어간 것이 소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이창배 선생님의 청구고전학원에 가게 되어 본격적으로 산타령 공부를 하게 되었다.”

- 실제 산타령은 다른 민요나 판소리에 견주어 사람들이 잘 모른다. 그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사실 산타령은 민요보다 부르기가 어렵다. 우선 그런 점 때문에 대중과 거리가 생긴 것 같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산타령이 제도권 교육에 드러나지 않은 점이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자꾸 접해보면 흥이 나고 묘미가 있을 터인데 어려서부터 전혀 접해볼 기회가 없으니 좋아하기는커녕 산타령 자체에 대한 이해도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초·중·고등학교에서 산타령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또 산타령을 가르칠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산타령 소리꾼들의 분발이 필요한 요건이며, 정부에서도 외면하지 말고 산타령 지원에 더욱 신경 써주기를 바란다.“

- 무형문화재 지정이 예악활동에 어떤 도움이 되며, 아쉬운 점은 없는지?

“물론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되는 것은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도움만 가지고는 산타령의 보급과 발전을 이루기엔 한계가 있다. 특히 계속해서 제자들을 길러내야 하는데, 초·중·고등학교에서 산타령을 가르치지 않는 지금 산타령을 공부해서 뻗어나갈 미래가 없기에 배우려는 사람도 적고, 스승으로서 제대로 힘을 줄 수 없기에 안타깝다.

일본의 한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정부의 지원으로 도쿄 번화가인 신주쿠의 49층짜리 빌딩 중 40층 전층을 쓰며, 한해에 450만 엔(우리 돈 약 5,900여만 원)을 지원받아가며 활동을 한다. 그런가 하면 365일 연중무휴로 상설 공연하는 가부키 극장도 있다. 그런 일본을 부러워만 해야 하는지 안타깝다.“

 

- 국악을 공부하는 젊은 후학들에게 들려줄 말이 있다면?

“요즘은 국악 공부하기도 여러모로 좋은 환경이 되었다. 그러나 옛날에는 배울 곳도 가르쳐줄 선생님도 마땅치 않았다. 한 번은 유종구 선생님께 사설지름시조 <푸른산중 백발옹이>를 배우려고 매주 토~일요일 녹음기를 든 채 대구 영남대학교를 오가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한 곡을 공부하려고 넉 달을 투자했는데 요즘 젊은 후학들이 그런 끈기가 있는지 모르겠다. 한 분야를 섭렵하려면 끊임없는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또 요즘 젊은 국악도들이 지나치게 서양화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세계를 끌어안아야 하기에 여러 가지 노력을 할 필요는 있지만 본디 제나라 음악 공부를 철저히 한 다음에 해야만 하는데,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현재 880여 쪽짜리 ≪경서도 창악대전≫를 내놓은 상태인데 이를 증보해서 1,200여 쪽짜리로 내놓으려고 막바지 노력 중이다. 그리고 우륵ㆍ왕산악ㆍ황진이ㆍ박연과 함께 현재 활동자까지 아우르는 8권가량의 ≪역대명인명창대전집≫을 내려고 준비 중이다.”

대담을 나누면서 보통 사람들 같으면 나이를 핑계대고 쉴 법도 하지만 젊은이 못지않은 의욕과 열정으로 산타령과 우리 음악의 발전을 위해 분발하고 있는 황용주 명창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오직 산타령 한 길을 외롭게 걸어온 명창은 산타령이 예전의 전성기를 되찾는 그날까지 온몸으로 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어디서 그런 기백이 나오는지 우리가 모두 닮아야 할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아이콘 주영순
2011-07-08 20:28
선소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지난번에 친구의 권유로 세종문화회관에서 황 명창의 소리를 듣고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우리의 좋은 '소리'들이 발전하고 그리고 일반인들도 즐기는 그런 음악이길 빕니다. 좋은 기사 고맙습니다.
   
이름아이콘 한영자
2011-07-08 21:42
아 선소리라는 장르도 있었군요.
한 번도 못들었는데 꼭 들어보고 싶네요.
우리의 전통문화가 자꾸 사라지는듯해 안타깝습니다.
다리밟기가 다시 살아나고 그래서 산타령도 인기 있는 소리가 되길 빕니다.
   
이름아이콘 설진수
2011-07-08 23:56
그렇게니 인기 있었던 소리가 대중에게 잊혀졌다니 안타깝습니다.
이제라도 다시 번영하는 예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이름아이콘 종로독자
2011-07-10 10:40
황용주 선생님 정말 대단한 분이시군요.
산타령 공연 꼭 보고 싶습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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